< 우리가 사는 도시에 대하여 >

▶ 서울 이야기

▷ 반복과 차이





서울 이야기 (현실문화 2008)에서 발췌
> 문화도시 서울, 어떻게 만들 것인가 : 문화도시의 개념과 관점

문화도시의 개념을 규정하기 위해서는 우선 일반적으로 도시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전제적 인 논의가 필요하며, 이는 무엇보다도 ‘바람직한 도시’를 지향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우선 ‘기본이 바로 선 도시’를 상정한다. 이것은 ‘시민들이 쾌적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기초가 바로 선 도시’를 뜻한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구조적인 측면에서 적정하고, 기능적인 측면에서 원활히 작동되며, 형태적인 측면에서도 아름다운 도시를 뜻한다.
이렇게 ‘기본이 바로 선 도시’를 바탕으로 또는 이를 지향하면서 삶의 질을 더 고양시 킬 수 있는 상태로 옮아가는 도시를 우리는 문화도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문화도시란 문화시설 이 잘 갖추어져 있고, 문화예술에 대한 정책지원이 풍부한 도시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문화도시를 이루기 위해서는 문화적인 지표에 앞서서 기초적인 생활의 측면을 충실히 고려하는 관점이 절실히 요구된다. 요컨대 문화도시란 ‘살기 좋은 도시’ 또는 ‘살고 싶은 도시’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란 특별한 어떤 것이기에 앞서서 삶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문화는 삶의 총체적인 상황으로서 어떤 상태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도시를 말할 때 우리는 문화와 도시가 결합된 상태를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도시 자체가 문화의 복잡한 집적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문화의 복잡한 집적체로서의 도시’라는 개념은 도시가 만들어낸 공간적인 조직, 도시가 작동하는 구조, 그리고 그 도시 속에서 체험하는 경관과 매일매일 일상 속에서 시민들이 도시를 살고 이용하는 방식들을 섬세하게 연관지워 바라볼 것을 요청한다. 그러므로 문화도시란 이러저러한 것 이라고 설정한 뒤 외국의 사례를 무작정 반영하여 정책을 입안하고 제도를 세운다고 문화도시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어 떤 관점에서 도시를 바라보고 무엇을 위해서 문화를 생각하는가 하는 점 이다.
외국의 좋은 사례를 반영한 문화정책 이 문화를 파괴할 수도 있음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외국의 사례들을 적용한다고 해서 좋은 결과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은 도시에 대한 인식과 도시가 자리 잡고 있는 자연환경과 도시를 운영하고 살아가는 방식이 서로 크게 다르기 때문이며, 문화정책들이 문화를 저해한다는 것은 문화를 현실적인 상황과 일상적인 삶 속에서 바라보지 않고 추상적인 개념과 지표로만 사고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잘못된 관점 속에서 문화는 도시 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삶을 통해 생산하는 것이기보다는 경제적으로 생산된 것을 소비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대신에 여기에서는 문화도시를 바라보는 관점의 준거로 시간성, 역사성, 현실성, 일상성, 신뢰성, 생산성, 그리고 궁극적으로 공공성의 개념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문화도시란 궁극적으로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 기본이 바로 선 도시
― 고유한 자기 정체성을 가진 도시
― 공공성이 확장되고 보장되는 도시
― 삶이 문화가 되는 도시
― 문화도시를 위한 접근이 문화적인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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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문화도시인가?
21 세기를 특히 문화의 세기하고 말하는 것은 그 동안에 정치와 경제의 논리에 의해 장악되었던 사회가 바야흐로 ‘문화사회’로 옮아가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간에 문화가 전적으로 부재하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가 문화라고 부른 것의 실체는 대체로 정치와 경제의 논리가 만들어낸 것이지 문화 자체의 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도시의 발전과 확장도 결국은 정치와 경제의 힘이 만들어낸 것이지 시민들이 주체가 되고 그들이 원하는 삶이 표현된 것은 아니었다.
사실 그 동안 이 나라에서 도시를 만들어온 힘은 오직 개발독재의 폭력이라고 해도 크게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다. 개발독재의 힘으로 만들어진 도심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체험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개발의 폭력적인 힘밖에 없다. 시민들도 결과적으로 개발독재의 힘으로 만들어진 힘 밖에 없다. 시민들도 결과적으로 개발독재가 추구한 ‘파괴적인 개발’에 동참 하거나 소외되는 것밖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란 가끔씩 소비할 수도 있는 상품으로 전락해버렸다. 이러한 개발독재의 폐해를 바로잡기 위해 우리는 문화에 대한 오해들을 바로잡고, 삶의 질을 또 다른 차원으로 이동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문화도시란 완전히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어온 삶 속에서 문화적인 맥락들을 짚어내어 그 길을 열어주고 가치를 부여하는 일에서부터 출발해야만 한다. 비록 겉으로 그럴듯해 보이는 문화도시를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는 도시란 문화도시라고 할 수 없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는 문화도시를 지정하고, 문화벨트를 만들고, 문화산업을 육성해서 세계적인 문화경쟁력을 갖춘 도시를 만들자는 식의 논리가 아니라 문화에 대한 인식을 바로 세워 이를 통해 문화도시가 만들어지고 문화산업도 자생 하도록 순서를 정하는 일이다. 즉, 문화도시에서 문화산업으로 가는 것이 올바른 순서이지 그 역은 아니다. 문화산업을 일으키면 자동적으로 문화도시가 나타나서 그 속에서 문화적인 삶을 이어가고 가끔씩 문화를 경제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문화적인 퐁요를 느끼고 살아갈 수 있는 도시를 만들자는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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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시와 문화공간
문화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문화시설을 곳곳에 자리 잡게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도시 공간의 문화적인 재편에 바탕을 둔 문화 공간 만들기이다.
일상성/비일상성, 역사성, 제도성 등의 기준으로 살펴보았을 때 문화의 내용은 예술처럼 고도로 형식화되고 제도화된 형태로부터 분방하기 이를 데 없는 일상적인 삶의 형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문화공간에 대한 개념과 관점은 문화의 내용이 안고 있는 이러한 복잡성을 충분히 반영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문화공간은, 일반적으로 또는 관습적으로 문화공간이라고 일컬어 지는 ‘협의의 문화공간’, 즉 흔히 문화시설, 문화지구, 문화거리로 구분되는 문화공간과 함께 수많은 시민의 일상적인 삶이 이어지는 다양한 ‘일상 공간’을 포함하게 된다.
도시의 대표적인 공간에는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시민 대다수의 삶과 문화를 축적하고 생성 해가는 국지적인 장소성 과 독특성에 기반을 둔 공간들이 있다. 도시 마케팅에서는 이러한 공간들을 ‘문화공간’으로 파악하는데, 이것은 문화시설을 중심으로 문화거리, 문화지구, 문화벨트로 나뉜다. 이러한 ‘협의의 문화공간’은 물론 시민이 삶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며 큰 가치를 지닌다. 특히 이러한 공간들은 도시문화적인 상징성 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예컨대 종로가 없는 서울이나 한강이 없는 서울을 상상하기 힘든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서울에서는 이러한 ‘협의의 문화공간’도 일상공간과 마찬가지로 크게 파괴되고 훼손되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기획과 실천들이 깊이 있게 추진되어야 한다. 그러나 문화도시의 개념 에서 잘 알 수 있듯이 문화도시의 완성을 위해서는 일상 공간에 대한 문화적인 접근과 재 창조가 충분히 강조되어야 한다. 시민의 삶은 서울의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이러한 일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아가 삶이 곧 문화라는 관점 에서 볼 때 이러한 일상 공간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서울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제까지 서울의 문화공간정책이 일상문화와 일상공간에 대해 매우 소홀히 한 것이 오늘날 서울의 일상적인 도시 경관을 반문화적인 상태로 빠져들게 한 큰 원인이다.
서울에는 문화적으로 새롭게 만들어내야 할 공간도 있고, 문화적으로 없애고 고쳐야 할 공간도 있다. 이 두 가지 공간을 생산하는 과정은 공간을 문화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계기를 마련할 것 이며, 나아가 삶과 문화와 공간이 결합된다는 것의 의미를 몸으로 깨닫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러한 복합적인 생성을 통해 서울은 문화도시로 옮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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