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축에 대하여 >

▶ 건축 작품집_1-정기용과 서정일 대담

▷ 건축 작품집_2-김헌서문

▷ 흙과건축-잊혀진정신(사람건축도시)





1986-2010 정기용 건축 작품집 (현실문화 2011)에서 발췌
> 건축이론가 서정일 박사와의 대담

서정일(이하 '서')> 선생님 자신의 건축론 1장 1절은 어떻게 시작해보실 수 있겠습니까?

정기용(이하 '정')> 쉽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예전엔 안 그랬는데 건축을 할수록 방과 집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이 둘이 분리되기 시작했다는 거죠. 태초의 집은 방이었다고 봅니다. 인류 최초의 집은 방이죠. 방은 작은 단위인 것 같아도 모든 건축이 그렇듯이 사람들이 필요해서 만들잖아요. 일반적으로 건축 역사가들은 방을 피신처로 언급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고, 고대부터 지금까지도 집이 중요한 이유는 방 때문일 겁니다. 방이 집보다 앞서는 이유는, 따지고 또 따져볼 때 방은 영혼의 안식처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거기에 육신이 들어가지만 근본적으로 사람들이 원하는 건, 자기 방 속에서 편안함, 안도감, 휴식, 희망, 안온함 같은 것을 느끼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방이 필요한 것인데, 그것을 피신처로 보는 건, 고대부터 지금까지도 집이 중요한 이유는 방 때문일 겁니다. 방이 집보다 앞서는 이유는, 따지고 또 따져볼 때 방은 영혼의 안식처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거기에 육신이 들어가지만 근본적으로 사람들이 원하는 건, 자기 방 속에서 편안함, 안도감, 휴식, 희망, 안온함 같은 것을 느끼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방이 필요한 것인데, 그것을 피신처로 보는 건 너무 거친 관점입니다. 바깥이 험난하니 도망가는 곳이 방이라고 보는 것은 적절한 시작이 아닙니다. 생존의 측면으로만 본 것인데, 방은 일시적으로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수백 수천 년 동안 지속하며 사람들의 영혼이 쉬는 곳이었습니다. 동굴이건 움막이건 뭐건 말이죠. 원시 시대가 아닌 이 시대에도 그것을 증명해주는 것은 방이 하나인 몽골의 게르입니다. 유목민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방이 실제로 공간상으로 분화될 필요 없이 의식에서만 분화되면 되는 것이죠. 게르에도 상석이 있고 주인 자리가 있고, 여자와 남자의 질서가 있거든요. 물론 의식 속에서 말입니다.

서> 의식의 분화를 말씀하셨는데, 건축의 실제 역사에서 방은 형식과 예술의 발전에 따라 분화되지 않았습니까?

정> 그렇죠. 방에서 시작해서 그것이 점차 집이 되는 것이 농경사회 이후 지금까지의 과정입니다. 방이 집으로 분화하고 발전하는 이유는, 양식이나 형태가 아니라 부분과 전체의 관계에서 찾아야 합니다. 방이 한 부분이면 전체를 무엇으로 보느냐가 문제인데, 브라질 원주민이나 원시 시대에는 여자의 집과 남자의 집이 분리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집이 여자의 큰 방, 남자의 큰 방인 셈이죠. 문제는 남녀가 같은 공간에 살게 되면서 가족이 생겨나고 가족 구성원 간의 역할 분담이 생겼고, 이때 역할 분담의 핵심은 가족의 지습성이지요. 집의 형태가 연속하는 게 아니라, 가족 구성 형태가 부분과 전체 사이에서 관계를 맺으며 그 관계가 집으로 번역된 것이죠. 뒤집어 말하면 전체의 개념―그게 한 부족일 수도 가족일 수도 있는데―에서는 필히 부분이 분절될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을 부분으로 보고 무엇을 전체로 보느냐의 문제가 생겨나죠.
방이 집으로 되는 두 번째 이유는, 부족이나 씨족 같은 가족단위가 아니라 한 집단이 사회라는 이름으로 발전하면서 거기서 일정한 규율과 법칙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 사회를 지속하기 위한 것이지, 해체하기 위한 것은 아니죠. 거기서 다시 작은 부분, 큰 전체가 또 다시 확장하는 개념으로 나아가면서 역으로 사회가 각 구성원들에게 거의 구속에 가까운 압제적 권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 첫 번째가 근친상간을 금하는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근친상간을 금기시하면서 사회가 복잡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근친상간의 문제를 문제 삼기 시작한 것은 가족이 공고화 하면서 남녀의 역할이 분명해지고 나아가 유전상의 열성법칙을 경험에서 알아내면서부터입니다. 근친상간을 금한 것은 열성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려는 구성원들의 노력이었죠. 그리고 그런 것이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집에 영향을 주는 것이었죠. 부부의 침실이 생기고 아이들의 방이 생기는 식으로 말입니다. 방이 분화하는 것은 사회성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거라고 봅니다.

서> 이 이야기가 주택에서의 주거를 넘어서서 현대 사회의 업무, 교육 등의 분야까지 확장될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정> 그렇죠. 지금은 원시 시대보다 금기사항이 더 많잖아요. 원시 시대보다 더 위험한 사회이기에 곳곳에 금기가 많고, 게다가 사회적 구속으로 법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소한 것도 규제하고 CCTV로 녹화하잖아요. 지금은 사회적으로나 가족 내부에서 규율과 원칙이 너무 많은 셈이죠. 먹는 것조차 매일같이 전쟁을 치르고 있지 않습니까. 무슨 제품은 먹지 마라, 시장 보는 것도 무엇은 어디 가서 사야 된다는 식으로.

서> 방이 가족과 사회의 발전에서 생기는 규율 때문에 집으로 분화하고 발전한다는 관점은, 우리가 방에 대해 뭔가를 재발견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려는 건지, 방의 가치가 지금 위협받고 있다거나 방이 해체되고 있다는 것인지요?

정> 방의 가치가 위협받는다기보다 방이 다시 다른 방으로 분화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 시대는 집이 안 필요한데, 내가 보기에 가족은 해체되지 않았지만 해체된 것이나 다름없고, 시간이 갈수록 그렇고, 정주하기보다는 유목하고 떠돌고 있습니다. 집에서 안 살죠. 방이 뭐냐고 말하면, 그것이 텅 비어 있고 신체가 그것을 채운다고들 보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방은 신체의 연장입니다. 물리적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라 심리적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신체의 연장이란, 자유, 상상력, 공포, 기억 같은 감성이 증폭되는 공간입니다. 그것은 방의 주인에게만 보입니다. 그 방에 지속적으로 오래 머무르면 그런 심리적 상황이 공간으로 전환될 수 있죠. 이것은 어느 각도에서건 그 방에 앉는 자세, 잠자는 방법 등 여러 가지가 방과 긴밀하게 공간적으로 물리적으로 접속되기 시작하면서 방이 진짜로 신체가 된다는 뜻이죠.

서> 『감응의 건축』이란 책 제목에서 감응이란 말을 쓰신 것도 그런 의미에서입니까?

정> 저의 건축에서 철학이, 또 창작론이 무엇이냐, 어떻게 작업하느냐 묻는다면, 감응의 건축이라는 말이 저의 창작론에 맞아 보입니다.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내가 건축한 여러 가지 건축 작업은 어떻게 보면 일관성은 있지만 다 다른데, 그 이유를 추적하다 보면 거기엔 지형과 땅의 잠재력과 그 땅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 또한 항상 어느 시점에서 건축을 하기에 그 시점의 여러 사회적 분위기, 이런 것들과 모두 감응해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에 저도 사전에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감응이란 무엇이냐. 그것은 그냥 단순히 느끼는 게 아니라 작용과 반작용, 즉 느끼고 전달되고, 전달된 것이 되돌아오게 하는 그런 상호 쌍방적 관계가 추상적으로가 아니라 감성적으로 일어났을 때 건축의 이미지나 형상이 싹이 트게 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감응은 한자어로는 어질 인(仁)자에서 나옵니다. 내가 어질다는 게 아닙니다. 어질 인자를 풀어보면 두 인간이란 뜻이고, 두 인간이 서 있으려면 서로 의지하고 감응해야 한다는 뜻인데요. 그래서 한자어에서는 모든 열매를 어질 인자와 같이 씁니다. 예를 들어 살구나무 씨를 행인(杏仁)이라는 쓰는 식으로요. 왜 그랬을까요.
여기에 한자 속에 내재한 절묘한 정신이 있습니다. 즉, 열매가 땅 속에 들어가서 적정한 온도와 습도가 맞으면 지상으로 싹이 쏘옥 올라오는데, 그때 열매는 적절한 온도와 습도를 ‘인식’해야 하잖아요? 그럴 때 인식한다고 하지 않고 열매가 ‘감응’한다고 한 것입니다. 그렇게 싹이 올라오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감응은 아름다운 일이라는 겁니다. 딱딱한 열매에서 푸른 새싹이 나와 생명이 자라니까요. 내가 건축하는 것도 아마 거의 그 비슷한 수준일 겁니다. 싹이 자라 줄기가 되고 열매가 맺고 하는 것. 그 열매가 무엇이냐 가 문제죠. 내가 열매의 가능성들을 가지고 다니는데, 그것이 감응할 때 열매의 내용, DNA가 정해져 버리죠. 감응하지 않고서는 싹을 틔우지 못해요. 그러면 억지 건축이 되는 거죠. 그렇게 한 적도 있고, 감응이 없는 건축도 있어요. 그렇지만 거의 대부분은 감응에 의해 탄생합니다. 때로는 감응이 안 될 수가 있는데 열과 온도가 맞지 않은 거죠. 그러면 쭉정이 건축이 되는데 이걸 영어로 ‘anesthetic'이라고 하죠. 마취. 그 반대가 ’aesthetic', 아름다움입니다.
그러면 어디서 감응하느냐. 아까 말했던 땅이 있습니다. 건축가로서 가장 가슴이 두근거릴 때는 계약할 때가 아닙니다. 처음 땅을 보러 갈 때입니다. 사실은 젊었을 때 더 그랬지만, 그날은 아침부터 흥분되죠. 과연 어떤 땅일까, 그 땅은 내게 어떤 암시를 줄까 하고. 그래서 대체로는 땅을 만난 순간에, 나이가 들수록, 설계가 절반은 이루어집니다. 무슨 번갯불같이 교감이 생기는 프로젝트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 연인의 감정이 일 때 번갯불처럼 눈에 콩깍지가 쓰이듯 그런 게 교감이거든요. 그렇다면 교감은 순간적일까 하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감이나 감응은 그 사람의 온 역사가 응축된 순간이죠. 한 인간이 살아온 모든 경함과 지식과 상상력이 응축돼서 발현되는 그 순간이 감응하는 순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계의 절반을 했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서> 오늘날의 건축 설계의 프로세스나 접근 방식에서 본다면, 그런 접근 방식은 마치 직관이나 감각을 너무 중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고, 계산되지 않고 분석되지 않은 사고가 아닌가 하고 물어볼 수 있겠습니다만.

정> 당연히 그렇겠죠. 하지만 그 순간적으로 떠오른 이미지는 분석적이지만 사실은 이미지의 형상 자체는 개념적이죠. 훨씬 더 분석적이지만 사실은 이미지의 형상 자체는 개념적이죠. 훨씬 더 분석적이고 직관을 넘어선, 포괄적으로, 어찌 보면 직관을 초월한 개념적 이미지죠. 감응에는 두 번째로 사람들이 있습니다. 쓸 사람, 건축주 등 사람들이 원하는 것, 그 사람들의 생각, 이미지, 그런 것들이 가세합니다. 또 다른 감응으로는, 늘 그런 질문을 하는데, 하나의 작품으로 모든 욕심을 다 풀 생각을 안 하는 게 원칙입니다. 늘 제 생각은 적어도 하나만 건지자, 욕심 내지 말자는 것입니다.
또한 시대의 기류가 있습니다. 건축가들은 두 눈을 집에 두지 않고 가지고 다니죠. 답사를 하거나 어느 다른 도시를 가거나 때론 심할 정도로 그 시대에 생산되는 건축들을 비판적 시각에서 분석하는 습관이 있어요. 거친 말로 저 건물 왜 저런가 하고 말했을 땐 이미 분석이 끝나 있죠. 이는 꼭 평가라기보다는 나름대로 항상 어느 시점이든지 어느 건축을 할 때 그와 유사한 것, 아니면 유사하지 않아도 그 시대가 만들어내고 있는 풍경, 문제점, 이런 것들이 늘 어떤 프로젝트를 할 때 쌓여 있죠. 아, 이것은 이런 점에서 이렇게 돼야 하지 않을까 하는 당위성, 내가 선정한 시대의 당위성, 또는 시대가 원하는 건축, 또는 시대가 모자라 하고 목말라 하는 것들 그런 것들이 은연중에 쌓여 있는 것이죠.
나머지는 건축가로서의 모든 기본적 소양이 동원되어 서서히 싹이 가지를 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개는 수정도 많이 하지만 기본 골격은 초창기에 완성됩니다. 오히려 너무 빠른 속도로 정리되기 때문에 처음엔 어떻게든 연필을 안 잡으려고 애씁니다. 연필을 손에 잡는 순간 거의 다 일필휘지하듯이 그려버리거든요. 머리가 너무 빨라 작동해서 손이 막 쫒아가니까 말리는 거죠. 그래서 뜸을 들이고 또 뜸을 들입니다. 그래서 어떤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온몸으로 그 프로젝트와 함께 살게 됩니다. 자나 깨나, 화장실에 가나 머릿속을 떠나지 않죠. 그게 오래 지속될수록 프로젝트는 계속 변화합니다. 머릿속에서 사라져야 프로젝트가 종결되죠. 머릿속에 남아 있다는 것은 덜 숙성됐다는 것이고, 질문도 많고 해결되지 않은 것도 많다는 것이죠. 어떤 때는 디테일 하나하나가 머릿속에서 다 결정이 됩니다. 프로젝트가 머릿속에 들어오면 갈등이 시작돼요. 기본적인 생각은 정리됐지만 건축으로 넘어가는 단계는 고뇌의 단계예요. 형상을 갖는 순간부터 제어를 해야 하니ᄁᆞ 아주 힘든 시기가 되는 거죠.

서> 그 형상의 내용이 뭐냐를 여쭤보고 싶습니다. 이미지라고 하셨지만 그 이미지는 단순히 건물의 프로파일이나 기하학적인 선을 가리키지는 않으실 것 같은데요.

정>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첫 번째 이미지는 형상이 아니라 개념적입니다. 이를테면, 곤충박물관을 설계할 때, 첫 번째 당과의 교감은, 이 땅에 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짓지 말고, 짓되 가급적 최소화하라. 그건 형상이 아니라 거의 땅의 명령 수준이죠. 그럼, 짓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지하화 할 수밖에 없게 되죠. 명분이 있고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무주 곤충박물관 설계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 분은 최재천 교수입니다. 아까 말한 사람과의 교감이죠. 그 바쁘신 분을 만났을 때, 인사 나누고 앉자마자 제가 던진 첫 질문은 이랬습니다. “곤충박물관을 설계하게 됐는데 솔직히 저는 곤충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것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곤충 등에 핀을 꽂아서 표본만 전시하는 그런 박물관은 짓고 싶지 않습니다.” 그 순간 답이 나온 거고, 말하는 순간에 머릿속에서 설계를 다해 버린 거죠. 그분 말씀이 “정 선생님, 곤충은 곤충 개체 자체의 문제가 아닙니다.”, “왜요?”,“곤충은 식물과의 공생관계, 그게 곤충의 중요성이고 위대한 점입니다. 전 세계에 제일 많은 종이 곤충인데 그게 다 식물과 공생하는 존재들입니다. 식물의 지속가능성은 곤충이 보장합니다. 그게 곤충의 핵심입니다. 지구상에서 곤충이 지닌 역할의 핵심입니다. 발이 여섯 개고 어쩌고가 아니라, 곤충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식물과의 관계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순간에 식물원과 곤충박물관을 결합하는 생각이 올랐습니다. 그렇다, 곤충을 개별적 형태의 흥미로 볼 게 아니라 우주적 관계, 생태적 관계로 봐야겠다. 그래서 곤충을 우주 역사 속에서, 지구 역사 속에서 파악하도록 하기 위해 우선 지하로 내려가서 지하의 곤충 세계 , 물속의 곤충 세계를 보고, 그러고 나서 지상으로 나오면 식물이 곤충과 만나는 그런 공간을 만든 겁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과 만나서 만든 거예요.

서> 일단 방에 대한 태도를 결정하시고, 그 다음에 프로젝트의 성격을 파악함으로 해서 거의 자연스럽게 발견이 진행되는 것같이 들리는데, 그렇다면 이른바 프로그램을 순차적으로 체계적으로 분석하려는 설계 방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선생님은 거의 화살같이 결과물을 쏘아 맞추시는 것 같거든요. 프로그램이라고 하는 아주 기계적인 분석 방법들을 한 번에 건너뛰는 듯 말입니다.

정> 그렇지 않습니다. 지속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가는 질문이 딱 하나 있지요. 그것이 ‘근원적 질문’입니다. 아까 어떤 것 하나라도 구한다고 그랬지요. 그게 근원적 질문입니다. 그것이 프로그램의 분석이고, 기능적 분석으로 전환됩니다. 방금 말한 곤충박물관에서 근원적 질문은 ‘곤충이란 무엇인가?’였습니다.

서> 그런데, 곤충박물관도 그렇지만, 사실 건축은 대부분 복합적이고 이질적인 프로그램들이 상당히 많아서, 그런 근원적 질문은 도전받고 흔들리지 않습니까?

정> 흔들리지 않아요. 흔들릴 수 없는 게, 추택을 설계한다 치면, 나는 늘 아무리 설계를 여러 번 해도 ‘주택이란 무엇인가’, ‘집이란 무엇인가’질문합니다. 거기서 새로운 답을 찾는 겁니다. 또한 새로운 답은 지형과 늘 맞물려 있는 쌍을 이룹니다. 무슨 프로젝트든지 근원적 질문이 하나씩 있습니다. 코리아나 박물관의 경우는, 첫째, ‘박물관이란 무엇인가’ 둘째, ‘강남이란 대체 어떤 땅인가’ 그런 근원적 질문을 던졌죠. 근원적 질문이 없으면 새로움이 생기지 않아요. 똑같은 것을 답습할 수밖에 없어요.

서> 그 ‘근원적 질문’들은 개별 프로젝트마다 다른가요?

정> 아니, 집을 설계한다 치면, ‘집이 무엇인가’, ‘가족이 무엇인가’ 하는 식으로 집과 관련된 대표적 키워드들이 있잖아요. 박물관이라면, '박물관이란 무엇인가‘, 해답은 여러 갈래일 수 있겠지만. 곤충 박물관은 박물관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곤충이 무엇이냐‘가 질문이었고 진주동명중고등학교의 경우는 ’학교란 무엇인가‘가 근원적 질문이었어요. 중고등학교 건물은 늘 일자고 바깥에 네모난 마당이 있어야 하는가, 운동장이 뒤에 가거나 옆에 가도 되는 것 아니냐 하는 물음으로 이어지는.

서> 그럴 때 기존의 유형들, 즉 시간과 관습에 의해 굳어진 유형들에 대해 그것이 왜 그런지 따져 물으시는 편인가요, 아니면 그것을 파괴해보거나 전복해보는 시도로 우선 접근하시나요?

정> 전복하려는 의도는 전혀 아니죠. 근원적 질문을 하는 데는 세 가지 의도, 그것의 세 가지 좋은 성과가 있습니다. 첫째는 공부하는 겁니다. 둘째는 공부하는 가운데 문제점을 발견하는 겁니다. 즉, 논의 없이 지속되는 불합리한 것, 모순되는 것, 또는 정말 바꿔야만 하는 것, 그런 것들을 찾는 거죠. 그러면서 건축화할 대안을 찾습니다. 거기엔 프로그램, 형상, 건축, 재료, 기술, 모든 포함되지요. 즉, 근원적 질문은 프로젝트 전체에 진행되는 모터 같은 겁니다. 땅과 교감하는 것은 개념, 즉 이미지의 개념의 문제고, 그 틀 속에서 모터가 돌아 건축화 하는 것이죠. 땅, 근원적 질문, 거기에 더해 시대적 기류, 거기다 또 더하면 건축주, 사용자들의 생각들. 나는 그 생각들을 무시하지 않고 가급적 존중하려고 하죠. 그 네 가지가 결합되는 방식이 ‘감응’입니다. 감응은 억지로는 안 되니 다시 말해, 감응이란 내가 충분히 이해하고 감성적으로 동의할 때만 하나의 ‘선택’으로 건축에 포함되죠.
그 다음에 또 하나의 큰 얼개가 있습니다. 반복고가 차이예요. 근원적 질문의 두 번째에 해당하는 것인데, 내가 이 건축에서 무엇을 반복하고 어디에 차이를 둘 것인가의 질문입니다. ‘반복’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지금까지 있어온 건축들에서 내가 판단하지 않고 차용해야 하는 것들, 변치 않는 것들, 필수인 것들, 빛, 공기, 시선 같은 건축의 거의 본질적인 것들입니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고전 건축의 재창조 내지는 재해석이라고 할 수도 있죠. ‘차이’라는 것은 반복되는 것 중에 새롭게 드러내야 하는 것들을 가리킵니다. 어떨 때는 반복 속에 차이가 있을 수도 있고, 어떤 건 정말 새로운 차이가 만들어질 수도 있죠. 영월 구인헌을 보면 거의 반복에 가까워서, 고전 건축에 있던 것들을 다 차용했어요. 그런데 거기 큰 차이가 하나 있는데 무엇인가 하면, 조금씩 다 반칙을 했다는 겁니다. 잘 드러나지는 않아요. 남쪽으로 난 창을 가급적 줄였는데, 우리나라 기후에는 배치되죠. 또한 토벽과 콘크리트를 만나지 않게 했는데, 전통 건축에 없는 큰 차이고, 그래서 콘크리트와 흙벽 사이로 마당의 빛이 반사되어 들어가게 고안했죠. 그런 아주 세부적인 것에서, 그러면서 굉장히 모던하게 보이는 것이 따지고 보면 대단히 고전적인 것들의 현재화에 불과한 것입니다.
또, 안성면사무소를 봅시다. ‘면사무소란 무엇인가’가 근원적 질문이에요. 그래서 공부해보니 면사무소가 필요 없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주민들이 면사무소가 아니라 이름 자체가 주민의 집으로 전환되는 시점이었는데, 그래서 쓸 사람들이 주민이라 그들에게 물어봐야겠다 하니 그 문제점을 알게 됐죠. 그래서 대안으로 목욕탕을 제시하게 된 거죠. 그게 근원적 질문이 가져온 효과예요. 거기서도 반복과 차이는 뭐냐면 안성면사무소의 남쪽으로 난 창에 전부 차양이 있고, 또한, 홑집으로 길게 되어 있어서 전부 자연 환기가 되는데, 그런 것은 아주 근본적인 것 그대로예요. 비뚤어진 것은 왜냐하면 거기에는 반칙이 있어요. 덕유산 쪽을 더 보기 위해서죠. 그러니까 내가 자의적으로 머릿속에서 ‘아름다운’ 건축 같은 걸 생산해낸 적은 없고, 땅 그리고 지금 이야기한 근원적 질문, 반복과 차이라는 명제, 감응, 이런 것이 다 결합된 것이죠.
그래서 저의 건축은 그리는 대로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생성’되는 것입니다. 서서히 시간이 가며, 지금 이야기한 것들이 결합되고 어찌 보면 변증법인 관계로 서서히 생성되는, 즉 성취된 것이 아닌 됨의 것입니다. 그러니 건축가 자신도 큰 방향은 알아도 결과물은 예측하지 못하는 거죠. 그래서 저는 그 결과물을 거의 손댈 수 없는 거의 필연적인 것의 수준으로 받아들입니다. 순천도서관도 처음 설계할 때 그렇게 될지 상상하지 못했어요. ‘어린이도서관이란 무엇인가’, ‘어린이란 누구인가’, 그것이 근원적 질문이죠. 모든 프로젝트가 다 똑같이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아무리 땅과 교감이 있다 해도 말입니다.

서> 기본에 속하는 것들이 반복되어야 할 것이라는 말씀을 좀 더 설명해주십시오.

정> 반복되어야 하는 첫 번째가 풍토입니다. 풍토란 그 지역의 기후, 역사, 문화가 결합돼서 나타난 거죠. 많은 건축가들이 풍토에 대해 기술적으로 다 해결한다고 하는데 천부당만부당한 소리입니다. 역사, 문화를 어떻게 기술적으로 해결합니까. 그러니 풍토에 대한 말에 오해들이 있는 것 같아요. 풍토라면 마치 원시적이고 토속적이고 버내큘러하고 하는 식으로 말이죠. 그렇지 않고, 제가 이야기하는 풍토는, 당연히 건축은 기후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기후가 우선이고, 그 다음으로 문화의 문제인데 그것은 가치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서울 한복판에 집을 짓는데 아치를 둬서 이슬람 집처럼 하면 보편적 가치에서 어긋나겠죠. 그러면 튀죠.
그래서 두 번째 문제가 바로 풍경입니다. 풍경은 바뀌지 않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건축가들은 건축을 개별적으로 생산해도 일반 사람들에게 건축은 개별적이지 않고 총체적이고 집합적이란 말입니다. 거기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건축은 소유하지 않아도 보는 것만으로도 사용하는 겁니다. 보는 것으로 쓰는 게 훨씬 더 강력할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거기에는 비판적 시선도 있고 동의하거나 거부하거나 기뻐하거나 슬퍼하거나 저주하거나 그런 판단이 아무런 제제 없이 가해지거든요. 일반인이 새로 지은 광화문을 보고, 아, 근사하다, 아, 날아갈 듯하다고 느낀다면 그런 감성은 어디서 오느냐, 그건 지식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본능에서 오는 것이거든요. 어느 도시를 아름답다, 질서 있다, 중세적이다, 근사하다 할 때도 그게 다 감성적 판단에서 오는 것이죠. 그것은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내릴 수 있는 중요한, 도시 건축에 대한 본능적 감성이죠.
사람들은 건축이나 도시에 대해 개별적 가치로 판단하지 않고 ‘이미지적’으로 판단합니다. ‘이미지적’이란 분석 이전에 집합적 형태로, 질서 있다, 무질서하다, 엉망이다, 폐허다 하는 것으로, 그런 언어적 판단은 일반인이 건축가보다 더 정확하게 내릴 수 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모든 도시가 개별적 소유는 있지만 우리 모두의 것이 됩니다. 보는 관점에서 말이죠. 그것이 바로 공공성이고, 그래서 건축은 태생이 공공적입니다. 건축 자체가 다 풍경으로 포섭되기 때문이죠. 일반인은 풍경으로 도시를 바라보지 개별 건축을 헤아리며 보는 게 아니거든요. 그것이 총체적으로 모든 시민이 평균적으로 소유하고 판단하는 이미지라는 것이죠. 그게 어디서 오느냐 하면 개별적 건축들이 집합된 형태에서 오는 것이죠. 그걸 우리는 풍경이라고 부르죠. 그러니까 우리가 도시 건축에서 이야기하는 풍경은 건축의 ‘공공성’에 대한 언급이기도 한데, 왜냐하면 시선을 공유하기 때문이죠. 공공건물이라고 그 건물만 일반 사람이 보는 것이 아니고, 이집 저집 부자의 집, 가난한 사람의 집 다 섞인 상태도 보죠. 높은 데에 올라가서 보면 더 그렇지요. 거기선 소유가 없어요. 연속된 면이고 풍경이죠. 그 점을 건축가가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서> 풍토와 풍경에 대한 접근에 일반적 원칙이 있습니까?

정> 지역마다 다릅니다. 농촌이냐 도시냐에 따라서도. 농촌에 건축할 때의 기본 원칙은 두드러지지 않게 하는 것이죠. 납작 엎드릴 수 있으면 엎드립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산과 강이 이미 풍경의 기본을 만들어 놓았고, 이미 기초를 만들어 놨기 때문에 거기에 순응하는 것이 최상의 방책이기 때문이죠. 순응하되 때로는 조금씩 도전도 있을 수 있죠. 그게 무주 버스정류장의 예이죠. 아주 작은 구조물이라 작고 풍경에도 휩쓸려갈 만하지만 그렇게 호락호락 휩쓸려가지 않아요. 아무리 작아도 풍경과 대립하려고 노력하고 있죠. 그럴 때 자연이 더 자연스러워지는 법입니다.

서> 순응하지 않고 적절한 방식으로 대립한다는 것은 무작정 대립하는 것과 어떻게 다를까요. 어떤 선에서 적정선을 찾을 수 있습니까.

정> 무작정 대립하는 것은 건축의 내적 논리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것이고, 그렇지 않고 대립하며 조화를 찾는다는 것은 주변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죠. 교회를 지어도, 그냥 교회를 지으려고 애써서 마을과 전혀 동떨어진 건물을 지어 놓으면, 특히 교회 건물, 농협 건물 같은 것들을 지어 놓으면, 농촌에서 맥을 못 춥니다. 그 이유는, 주변을 살피지 않고 자기 존재만 드러내려 했기 때문이죠. 저는 도시에서는 주변 맥락을 쫓아가려는 편입니다. 도시에서도 주변을 존중하려는 것이 제게는 제일 큰 것 같아요. 공항동성당, 코리아나, 길동성당, 모든 작품이 다 그래요. 중소도시는 많이 했지만 서울에서는 건축을 많이 안 했는데, 주택 일부와 을지로입구 옛 서울투자금융건물이 있죠. 서울투자금융건물은 대단히 풍경 적이에요. 그 네거리의 건물과 풍경이 내가 보기에 뭔가 장식이 많아 좀 조잡했는데, 그래서 깨끗한 면, 단순한 배경을 찾을 생각을 많이 했어요. 원래 그 건물은 무슨 상품 포장한 것처럼 짙고 밝은 줄무늬가 번갈아 있는 디자인이었는데, 그걸 다 지워버렸죠. 도시에서는 주변 맥락에 순응하려고 애쓰기도 하지만 도시에서 건축하는 내 자세를 가만히 보면, 기본적인 것 비슷하지만 또 다른 측면이 장소 만들기입니다. 지어지진 않았지만 인사동 가나화랑 설계에서 어떻게든 마당을 만들어, 인사동에 없는 장소를 만들려고 애썼죠. 스페이스 C의 옥상 정원 같은 것이 장소 만들기의 시도이고, 공항동성당도 ‘성당’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신도들을 에워싸고 보살피는 장소 만들기의 시도였죠.

서> 풍경의 공공성에 대해 좀 더 여쭤보겠습니다. 일반인들이 건축을 하나의 이미지, 풍경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풍경에 대한 일반인들의 판단을 어디까지 믿느냐는 문제가 있겠습니다.

정> 일반인이 어떻게 볼 것이냐 그것은 고려하지 않아요. 그걸 고려한다는 게 아니라 그렇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는 뜻이죠. 일반인이 어떻게 봐주길 바라지는 않고, 아까 이야기한 여러 건축적 방법들이 결과로 드러날 뿐이죠.

서> 건축의 미적 가치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대화의 맨 처음에 방을 말씀하셨는데, 선생님께서 보시는 방의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정> 방에서 아름다움은 스케일의 문제예요. 판테온 같은 방이 가져오는 아름다움, 충격, 숭고함, 장엄함은 스케일에서 나오죠. 단순한 크기가 아닌 스케일 말입니다. 파리 노트르담 사원 뒤에 있는 순교자기념관에서 느낀 것은 건축의 공간이라는 것이 물리적으로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 우선하는 것이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느끼는 공간에 대한 감각이 훨씬 더 강력하다는 점이었죠. 개인이 공간에 대해서 반응하는 공간의 개념, 모든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가지고 있는 그 감각력을 끌어내는 것, 아름다운 동시에 공포스러운 것, 그것은 시퀀스의 문제입니다. 결국 아름다움은 시퀀스와 스케일과 빛의 문제입니다. 토로네 수도원에서 느낀 것은 전율과 눈물인데, 그 이유는 빛 때문입니다. 쪼아진 돌, 정(釘)다듬된 돌, 거기에 난반사되는 빛. 난반사된 빛의 품질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일반적인 빛에서 볼 수 없는 영혼의 빛, 정신의 빛이죠. 마치 모차르트의 진혼곡 수준이죠. 보이지 않는 것이 드러날 때의 감동이란. 토로네의 빛, 판테온의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스케일, 순교자기념관의 영화적인 시퀀스, 세 가지 중 무엇이 더 강한가의 문제죠.

서> 주택을 설계하실 때 어떤 원칙을 가지고 접근하시나요? 선생님은 주택을 설계하실 때 새로운 주거공간을 고안해내기보다는 오히려 오래된 삶의 방식과 주택의 전통적 요소를 존중하는 듯합니다. 앞서 ‘방’을 설명하실 때 언급하셨지만, 주거건축에서는 안온함과 안식에 가장 중점을 두지 않으셨나 싶은데, 실현하시고자 하는 주안점이 무엇인지요?

정> 첫 번째로, 내 건축에서 주거공간의 큰 틀은 한국 고전 건축에서 왔음에 틀림없습니다. 그 중에서도 마당이나 중정과 같은 빈 공간을 어떻게 해서든지 집안에 끌어들이려고 애썼어요. 그건 거의 프로토타입 같은 건데요. 중정을 두는 이유는, 하나는 빛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환기 때문입니다. 삶이 풍요로워지며 집들이 뚱뚱해지기 시작했고 집이 홑집이 아닌 겹집같이 됐는데 그러면서 환기가 잘 안되게 됐죠. 작은 중정은 한국 고전 건축의 원형이기도 하지만 내겐 설비의 문제예요. 어떻게든 자연의 빛을 끌어들이고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 공기를 자연스럽게 순환시키려고 애쓰죠. 손바닥 만한 중정은 하나의 설비인 셈입니다. 그리고 요즘 사람들은 집 밖에 잘 안 나가고 겨울에도 집 안을 따뜻하게 덥히고 그 안에만 머무르기에, 작은 포켓 수준이라도 중정을 만들어 그 안에 눈이 내리게 하고 비가 내리게 합니다. 설령 비가 좀 새더라도 말이죠. 완벽한 집에 대한 고집을 버리라는 겁니다. 내 주택들에서 중정은 기후와 감응하는 통로고, 설비고, 빛이에요. 건폐율에 안 들어가니 집이 더 넓어 보이기도 하고.
두 번째로, 집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아까 안온함을 말씀하셨지만 나는 오히려 변화에 대처하는 방법을 생각해요. 집은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나는 정주 개념보다 변화에 대처하는 한국적 방, 보편적 공간에 늘 관심을 갖고 있어요.

서> 그 변화에 대처하는 방은 어떻게 구현하시나요?

정> 우선, 창의 위치라든지 집 안 동선에서의 위치로 구현하죠. 그리고 가급적 고정된 가구를 두지 않고요. 또한 창대의 높이를 적절히 하는데, 방을 바꾸더라도 창대가 너무 높거나 낮지 않게 조절합니다. 즉, 아주 세부적으로 접근해서 구현해요.
세 번째로, 집이란 사람들이 오래 머물기도 하지만 매 순간을 느끼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ᄁᆞᇀ의 경치든 빛이든 우연한 만남, 종, 그런 것을 도처에 여러 가지 방식으로 만들어 두죠. 창의 크기, 창의 엇갈림, 문을 열고 들어오는 풍경, 시퀀스(대문에서 현관을 지나 침실까지 7,8단계에 이르는 시퀀스) 안에서 수많은 조우가 벌어지는 겁니다.

서> 조우는 가족보다는 주택 속의 개인을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집에서 가족의 문제는 어떻게 다루시나요?

정> 조우는 개인 차원의 것이고, 방에서는 가족 차원입니다.
마지막으로, 참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인데 아무리 가족이 해체되고 어쨌다 하더라도 집은 그래도 집입니다. 거기에서 집과 인간을 연결하는 제일 중요한 고리는 인간에게 영혼이 있듯이 집에도 영혼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죠. 그래서 어느 부분이 되었건 집을 설계할 때 ‘성소’를 넣으려고 애씁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요. 때로는 보이기도 하지만. 조우하되 신성한 것과 조우하는 신성한 공간을 일부러 만듭니다.

서> 그 신성함에는 혹 종교적인 함의가 있나요? 아니면 집의 거주자가 부탁해서 만드는 경우도 있나요? 아니면 선생님이 독자적으로 부여하시는 건가요?

정> 종교와 관계없어요. 집이 가진 깊은 내면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집의 혼으로 봅니다. 건축가들이 짓는 거대한 주택들은 대체로 깔끔하고 미님ㄹ하고 확확 트여 있는데 그런 데엔 영혼이 없는 것 같아요. 어딘지 조금은 깊고 내밀하고 좀 어둡기도 하고 그렇지만 늘 샘 같이 무엇인가 우러나오는 것 같기도 한 장소가 집의 어느 구석에 있어야 합니다. 요새 특히 서양 사람들이 짓는 집들을 보면 모든 것이 투명하고 깨끗하고 위생적이고 그러면서 세련되게 디자인되어 있어요. 집은 정신분석학적으로 보면, 가스통 바슐라르가 이야기했지만, 다락에 의식의 세계가 있고, 우리나라 집에는 흔치 않지만, 지하실에 무의식의 세계가 있죠. 집은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 중간에 존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락에서 세계를 배우고 어린 아이들이 세상에 대해 눈뜨는 것이죠.

서> 그래서 목화의 집 같은 경우 하늘을 보는 테라스를 둔 것인가요?

정> 그렇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단층이 아니도록, 단층이라도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구조를 가지도록 한 것입니다. 집이란 일단 지어지면 하늘과 땅을 고정적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에요. 집은 정신분석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공간입니다. 가족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서> 혹시 봉하주택에도 그런 공간이 있습니까?

정> 거기서는 마당이 그런 곳입니다. 그 마당을 거기 모든 사람들이 신비스럽게 생각해요. 실은, 돌을 작게 잘라서 마당에 뿌렸고, 그래서 햇볕이 쏟아지면 보석 같이 빛을 난반사해요. 그 중정에서의 느낌은 예민한 사람만 알아차려요. 참 이상하다, 밝긴 한데 빛이 이상하다고 그래요. 빛이 작렬할 때에는 추녀 끝으로 그 빛이 전달돼요.

서> 주택에서 추구하는 그런 원칙은, 마당이건 성소건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에서는 실현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공동주택에서 견지하시는 원칙은 무엇인가요?

정> 시기마다 다릅니다.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아파트는 부담 그 자체입니다. 구입해서 사는 것도 부담이고 파는 것도 부담이죠. 그래서 이 시대에 한국인들의 주거의 기본이 된 아파트에 대해서는 그것이 고무줄같이 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줄어들고 늘어나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해서, 건축가가 원하는 평면이 아니라 사는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쉽게 변형할 수 있는 공간들을 정말 쉽게 만들 수 있어요. 고정된 부분, 예를 들어 부엌, 화장실 등 물 쓰는 공간을 한쪽으로 몰아두면 문제가 해결돼요. 그러면 수많은 집합들이 가능해집니다.
두 번째로, 아파트에는 집합주거다운, 작게라도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그것은 출입구와 외부공간과의 문제예요. 아파트에도 저마다 마당을, 마당 비슷한 것이라도 만들어주면 좋겠어요.

서> 학교 설계를 많이 하셨는데요, 계원대학교, 진주동명중고등학교, 지평선중학교, 거기에 드라마센터, 어린이도서관까지 더해서 생각한다면 건축을 배움과 영감의 장소로 추구하셨어요. 프로그램에 대한 고려도 있었겠고 학생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건축적 장치도 있었으리라 짐작됩니다.

정> 학교 건축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두 사람, 미셸 푸코와 장뤽 고다르 때문입니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현대 국가 또는 부르주아 체제를 지속적으로 연장할 수 있는 공간 형식을 말하는데, 첫 번째가 격리의 원칙, 두 번째가 감시의 원칙, 세 번째가 훈육의 원칙이에요. 그래서 신ㄴ체에 지배계층이 원하는 몸과 마음을 쑤셔 넣은 것이고, 그 결과로 만들어진 발명품 세 가지가 정신병원, 학교, 감옥입니다. 푸코의 그런 생각을 단ㄴ편영화로 만든 사람이 장뤽 고다르입니다. ≪교육≫이라는 제목의 영화에는, 다큐멘터리 찍듯이 길거리에서 초등학교 가는 아이를 가로막고서 물어요. “너 어디 가니?”, “학교 가요.”, “학교에 왜 가니?”, “공부하러가요”, “왜 공부하니?” 같은 질문과 대답에서 시작해서 “네가 학교로 가는 거니, 학교가 네게 오는 거니”같은 어려운 질문을 하고 마지막에는, “네가 학교에 가면 부모님이 일 년 동안 학교에 몇 번 오니, 네가 감옥에 갇히면 면회 몇 번 올 것 같으니”하는 식으로 묻죠. 나중에는 아이가 답을 못하고 울 정도로 질문을 해댑니다. 학교를 감옥에 비유한 거죠. 나는 감시와 처벌과 훈육의 공간 대신 자유롭고 감시당하지 않고 청소년들이 맘껏 뜻을 펼 수 있도록 도처에 숨은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훈육의 공간이 아니라 상상의 공간을 만들려고 애썼죠.

서> 어린이도서관들에서는 그 점을 충분히 잘 보여주신 것 같습니다. 중고등학교에서 감시와 훈육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기 위한 장치는 무엇이었는가요?

정> 중정화입니다. 서로가 따뜻하게 볼 수 있게 말이죠. 그리고 중고등학교 운동장을 좀 떨어뜨려 놓았어요. 길들도 그렇습니다. 복도도 규격적이지 않고 모서리에는 굴곡져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여기저기 숨어 있어요. 특히 동명중고등학교는 좀 특별해요. 벌판에 만든 도시의 농토 한복판에 중고등학교가 들어가게 되어 있어서 썰렁하게 도시와 격리되는 조건이었어요. 그래서 격리되어 있지 않은 도시다운 집합의 면모를 가지게 했어요. 고등학교, 중학교, 식당, 강당이 에워싸여 있고, 길, 운동장, 기숙사 이런 것들이 전부 조직화되어 있죠. 마치 하나의 정원처럼.

서> 대학에서는 초점이 좀 달랐을 듯합니다. 계원대학의 경험을 말씀해주세요.

정> 대학에서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입니다. 계속 증축하거나 신축해야 하죠. 지금은 교육을 온전히 할 수 없을 만큼 급변하는 시대입니다. 특히 디자인 교육은 세상과 같이 호흡해야 하죠. 그래서 계원대학의 모든 건물은 증축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설계했어요. 그러면서도 안온하도록, 다양한 시선이 교차하도록, 밝도록 했습니다. 내가 설계한 학교들은 입구에 들어가면 현관이 침침해서 얼굴이 역광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모두가 빛 속에 얼굴이 보이게 했는데 그것이 핵심이에요. 계원대학 본관도 건물을 들어서면 중정의 큰 천장에서 빛이 떨어져요.

서> 계원대학의 캠퍼스 전체 배치를 보면 학교 입구 쪽에 교육시설이 많이 몰려 있습니다. 이 건물들은 서로서로 잘 연결되어 보이는데, 큰 마당을 지나서 본관이 동떨어져 배치되어 있는 점은 의아합니다.

정> 본관과 다른 건물들 사이에 운동장이 있는 이유는, 그 위치에 골짜기 물이 도시로 빠져나가는 자연 구거가 있어서 그곳에 법적으로 집을 지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입구 쪽의 건물들을 서로 연결한 것은 경사진 땅에서 동선을 단축하기 위해서고요. 계원은 사실 잘 들여다보면 기계와 같아요. 왜냐하면 학생 수는 많고 세월은 자꾸 변하기에 합리적으로 모든 것이 운용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서도 어디든지 조금 따뜻한 공간을 만들려고 애를 썼어요. 정보관도 가운데가 뚫려 있습니다.

서> 가장 현대적인 건축 유형인 도시 업무시설들도 여럿 다루셨어요. 무애빌딩, 스페이스C, 을지로 네거리의 파사드까지 말이죠. 서울과 같은 현대 도시의 경관을 지배하고 있는 업무용 건물들에 대해 어떤 비평적 관점을 가지고 계시며 선생님의 디자인에서는 어떻게 접근하셨는지요.

정> 오피스 빌딩도 땅의 역사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특히 스페이스 C가 그렇습니다. 그 자리는 예전엔 농토였지만 지금 강남에서 농촌을 떠올리는 사람은 없죠. 그래서 스페이스 C의 기본 개념이 ‘서 있는 정원’입니다. 이중외피 사이사이에 나무를 심고 옥상에도 나무를 심었어요. 어떻게 보면 이 건물은 50, 60년대를 회상시키는 건물입니다. 그러면서도 낭만적인 게 아니라 건물 자체는 대단히 합리적이고 유용성이 크도록 만들었어요. 지하가 3층으로 되어 있고, 주차 타워가 있고, 도시건축법상의 제약들에 전부 맞추어 조절했죠. 주차 타워와 건축물 본체의 높이를 건축법상의 제약 조건에 맞추면서 쓸 수 있는 공간을 최대한 충족시키면서도 그 틈새에 서 있는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기본은 땅의 역사인 것입니다. 무애빌딩도 그렇죠. 즉, 선산인 낙산의 삐죽삐죽한 산의 경관, 앞쪽에 조건영 씨의 건물을 감안해서, 막다른 골목이지만 눈에 띄도록 삼각형 구도로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지역의 문제였고, 건물 뒷면은 뒤쪽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그것을 보면서 자라게 되어 있어 완전히 다르게 만들었어요. 그것이 주변과의 관계를 고려한 방식이었죠.

서> 스페이스 C가 서 있는 강남에는 강렬하고 날카롭고 자극적인 외관을 한 건물들이 많아요. 그것과 비교하면 선생님의 작품이 나타내는 선언은 조용하고 우아한 방식입니다. 과연 그런 방식으로 다른 건물들과 맞설 수 있나요?

정> 맞서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생각의 근본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서> 무애빌딩과 스페이스 C는 무척 다른 건물이지만, 공통점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 두 건물이 무척 다를 수밖에 없는데, 건축법규 때문이에요. 무애빌딩은 여섯 군데에서 사선제한이 있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집을 지을 수가 없었죠. 그 건물은 법규가 지은 집인 셈이에요.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이 있는데, 단면에 대한 생각은 두 건물에서 공통 되요. 스페이스 C는 단면을 잘 봐야 합니다. 단면 설계가 건축 설계의 핵심이었죠. 어떤 것은 단층, 어떤 것은 2개 층이고, 계단과 맞물리는 대단히 복잡한 구성입니다.

서> 땅과의 반응, 또는 땅을 회상시키는 접근 방식은 선생님의 건축물에서 일반적으로 추구되고 있는데, 전쟁기념관이라든지 부산민주공원 등과 같이 기념과 기억 자체가 목적인 건물에 대해서는 어떤 각별한 접근 방법이 있으신지요.

정> 6.25 50주년 기념 현상 설계 때 주최측은 원래 상징조형물을 원했어요. 나는 그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6.25를 기념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전쟁이 다시 안 알아나게 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소통의 공간이 중요하다고 봐서 소통의 공간을 만들었어요. 기억하고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토론하고 기억도 좀 하는 식으로 말이죠. 그러고는 전 세계의 학살에 대한 진실 규명 위원회가 전쟁기념관 지하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죠. 연구소도 함께 두고. 말하자면 6.25를 기념하는 방식이 전혀 다릅니다. 평화를 위한 운동, 그 운동의 베이스캠프 정도로 생각한 것이죠. 그래서 외부 유리벽에는 6.25 16개국 참전국들의 언어로 전쟁에 관련된 시와 문구들을 새기고, 안으로 들어가면 하늘과 땅만 보이고 지하에 회의장과 연구소 같은 것을 두자고 제안했습니다.

서> 지나온 시간을 건축물에 담고자 건축물의 외관과 재료를 다루는 일부 건축가들의 접근 방법과 비교하신다면, 선생님의 해법은 좀 달라 보입니다. 열림원의 녹색 지붕 같은 것은 직설화법 같습니다. 어떤 이유인가요?

정> 그것은 시간의 문제이기도 하고, 또 하나는 현대 건축이 제대로 논의하지 않고 지나간 자연의 문제 때문이기도 합니다. 자연은 시간, 공간, 생명 이런 것들이 농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현대 건축은 그것을 건축과 어떻게 접목할 것인지 제대로 논의해본 적이 없고 다만 문제를 비켜 지나갔어요. 어디로? 조경이라는 전문 분야로. 건축물은 건축가에게, 조경은 조경가에게 맡기는 식의 분업화를 통해 건축가들은 자연과의 관계에 천착하지 못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그런 것을 배운 셈이죠. 무주 공설운동장에서도 그랬고. 결국 건축을 완성하는 것은 자연과 사람입니다. 건축가가 기본은 하지만 완성하는 것은 사람이고, 그 이전에 자연이죠. 나무나 식물만 자연이 아닙니다. 시간, 공기, 퇴적, 사라짐 그 같은 모든 것이죠. 그런데 현대 건축은 자꾸 자연으로부터 멀어져서 늘 새 건물같이 금방 세수한 사람처럼 되어 있어요. 그건 건축을 죽이는 일이에요. 아니 건축을 자연으로부터 더 분리하는 일입니다.

서> 도시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할 수 있는지요. 선생님은 도시 설계적인 성격의 각종 ‘문화도시’를 구상하는 작업을 해오셨는데 거기서는 자연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셨는지요. 또 문화도시를 ‘기본이 바로 선 도시’라고도 정의해오셨는데, 그 외에 어떤 원칙들을 가지고 접근하시는지요.

정> 도시도 문제는 역사인 것 같아요. 도시는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ㅇ이 결합하는 첨예한 장소인데, 그 인공적인 것에서 도시를 더 자연과 조화롭게 할 수 있는 요소는 역사의 적층입니다. 역사의 적층을 통해 도시를 더 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도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그 도시의 역사를 이해하고 자연을 생각하는 그런 순서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 우리는 아무것도 제대로 못하고 있어요. 문화연대의 시민 활동에서 많은 답사를 한 이유도 그런 차원이죠. 그렇기 때문에 도시를 사랑하지 않고 디자인도시, 명품도시를 말하는 것은 모두 우스운 겁니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이 자신들이 사는 도시를 역사적으로, 자연적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대할 때, 그때 도시가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도시는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생성되는 것이에요. 사람과 자연과 역사가 어우러져서 생성되는 것입니다. 절대로 단숨에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서> 시민들과 함께 다양하고 열정적으로 해 오신 활동 중에, 우리 도시를 위해 가장 기여하신 일은 무엇이었다고 보십니까?

정> 답사라고 봅니다. 교육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깨우치는 것, 자기가 사는 땅, 도시를 새롭게 바라보는 것이죠. 그것이 도시 역사 공부의 시작입니다. 내 건축의 핵심은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현장성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도시든 건축이든. 현장의 역사, 지형, 사람……. 무주도 그렇고 모두 현장성입니다. 가상적으로 혼자 꿈꾸는 것이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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